Category Archives: 몸과 마음

카테고리를 시작하며

음식 이야기에서, 우리의 생명을 이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자신에게 맞는 먹을거리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때 ‘송과체’라는 기관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데, 이 송과체는 비단 먹을거리를 판단하는 것뿐 아니라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쩌면 가장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인 것으로 보인다.
‘~ 것으로 보인다’는 표현을 쓴 것은 현대의 과학이 송과체에 대해 충분히 주목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이해가 안 될 만큼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과학적으로 충분히 합의 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생명’의 움직임을 이해할 때는 이 송과체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정도다.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대해 전해지는 전통지식은 거의 대부분 송과체가 이 기관이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라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 카테고리를 하나 더 만들어 송과체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할까 한다.
비단 송과체 뿐 아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대하여, 전통지식은 중요한 것으로 강조했지만, 현대의 의과학medical science가 무시하거나 간과해온 부분은 너무나 많다. 현대의학은 그만큼 과거의 오랜 전통과는 별도로 새롭게 구축되어 온 의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 시작하는 ‘몸과 마음’ 카테고리는 송과체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그밖에도 우리 몸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들과 전통의 지혜를 비교 분석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관점을 정리하는 포스팅을 담으려 한다.

10 송과체와 포스트모더니티

앞으로 이 블로그에는 음식, 건강, 주거환경, 지구 시스템 변화, 출산 및 육아, 교육, 예술, 역사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글을 포스팅해갈 계획이다. 이 모두가 <About>에서 밝혔듯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지구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인가 함께 생각해볼 거리를 던지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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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간단하게 답을 주기 어려운 문제고, 나 혼자서 온전한 답을 내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나도 지금 더듬어가고 있는 중이고, 그 길을 함께 가는 사람이 많다면 더 든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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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20세기까지 그렇게나 자랑스러워했던 소위 ‘(근)현대적 지식’modern knowledge으로부터 우리는 근본적으로 방향 선회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19세기 무렵부터, 지구 전체적으로는 20세기 후반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한 이 현대적 지식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생각’thinking 및 그 생각의 주체로서 ‘인간’human being에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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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인간의 생각이라는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소위 ‘진리’로서 주장되어 왔던 것들의 내용이 시대, 주체 집단, 상황에 따라 크게 변해왔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때에 따라 정말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생각이 시대와 사회를 휩쓸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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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것이 19세기 후반 유럽인이 내세운 사회진화론이다. 모든 인류는 원시인에서 현대인으로 진화하며, 현재 살고 있는 인류 중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원주민이 원시적인 답보 상태에 있고, 유태인이 저급한 인종이며, 비유태계 유럽인이 가장 진화한 인종이어서, 뒤떨어진 인종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앞세워 엄청나게 비인간적인 일들이 행해져 왔으며, 최근 인류 역사의 오점으로 남아 있다.

10 overdevelopment

이 못지않게 한심했던 생각 중 하나는 인류는 자연을 마음대로 착취해서 풍요하고 편리하게 살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더 훌륭한 일이라는 인간중심적 개발주의다. 이로 인해 지구가 병들어 가고 있으며, 그 결과는 태어나는 미래세대에 작용하여 출산율이 줄어들고 예상 평균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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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런 사고 및 그에 기초한 행동방식은 ‘근대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남아 살아서 작동하고 있다. 반가운 것은 인류가 이 사실의 문제점을 인식하여, 극복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런 노력을 통틀어서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포스트모더니티’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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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티, 즉 문제가 많았던 모더니티(근대성)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효율적으로 열매를 걷으려면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할까?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생각’을 너무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다. 인간이 생각을 앞세워 작위적인 논리 구축에 빠져, 사회진화론이나 인간중심적 개발주의 같은 어처구니없는 궤변에 휘둘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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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생각’은 인간에게 있어서 소중한 능력 중 하나다. 하지만 머리로 논리만 따지지 않고, 가슴 혹은 ‘제3의 눈’으로 보는 통합적인 직관으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균형잡힌 시각으로 지구와 사람들 전체를 고려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습관을 몸에 붙였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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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가 송과체 및 소마틱 마커에 대해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말하고, 아직 채 밝혀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환기하는 이유다. 이 부분은 앞으로 다른 포스팅의 맥락에서도 계속 다루게 될 것이다. 들뢰즈가 말했던 “근대성의 촘촘한 그물”을 넘어서서 새로운 통찰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면서.

9 나는 생각하지 않아도 존재한다

뇌과학이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즘, 미국에서 학문적으로도 인정을 받으면서 또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뇌신경학자로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 박사를 꼽을 수 있다. 그의 관심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송과체 이야기와 관련된 것이지만, 아직 송과체에까지 연결되지는 않았고, 총사령관인 송과체가 판단을 하면 그 반응을 지시해서 보내는 사단 본부에 해당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전두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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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자극, 즉 신호가 오면, 우리 몸 안에서는 그 신호를 해석하고 거기 대해 판단을 한 후 반응 방식이 결정되어 실행된다. 예를 들면 대단히 위협적인 자극이라고 판단하면 바로 도망치거나 경계태세로 들어간다든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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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우리 뇌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마 17세기의 사상가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우리의 뇌 안에서 이성이 모든 경험과 지식을 종합하여 최선의 결정을 내릴 것”라고 말했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하고 가르치기 시작했던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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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로부터 약 350년 후 다마지오 박사의 의견은 다르다. 그의 주장은 인간이 모든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이 가장 나은지 다 “생각하려면”, 즉 무수한 직접·간접 경험에서 오는 정보를 다 처리해서 지적으로 종합하려면, 너무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들기 때문에, 대체로 초고속 지름길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 지름길은 이성을 통과하지 않고 호·불호를 판단하는 방식으로, 오히려  ‘정서’와 연관되어 있으며, 종래에 ‘본능’이라고 말해지던 부분과 비슷하다고 한다. 이런 다마지오의 설명을 ‘소마틱(신체적) 마커 가설Somatic Marker Hypothesis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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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서 개에게 물린 적이 있는 사람이 길을 가다가 좀 떨어진 곳에 큰 개가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자. 저 개를 피해서 지금 가던 길을 돌아가면 나에게 얼마나 손해가 생길 것이며, 저 개가 나를 물 확률이 얼마인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게 아니라,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피하려 할 것이다. 그것은 그 개를 본 순간 우리 의식이 미처 작동하기도 전에, 두뇌에서 소마틱 마커, 즉 몸에 신호를 보내는 물질을 만들어 ‘공포’라는 정서를 일으키면서 온 몸의 근육 움직임을 바꾸어놓기 때문이라고 다마지오는 설명한다.

9 소마틱 마커
소마틱 마커는 두뇌의 복내측시상하핵 전전두엽 피질(VMPFC)이라는 곳에서 생겨서 활동하는데, 위 그림에서 붉은 색으로 표시된 부분이다. 이곳은 원시뇌라고 하여, 인간이 고등동물로 진화하기 이전에 원시적인 생물체였을 때부터 존재했던 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아주 원시적인 생명체에서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생명체가 이런 판단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하는 과정보다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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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우리는 생각하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생각하는 것이 환경에 적응하는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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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틱 마커 가설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무수한 자극과 그것이 보내는 신호가 몸으로 전달되어 인간의 몸 전체가 그에 대한 반응을 하게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서, 가장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론 중 하나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대해 과학적으로 규명한 보기 드문 연구이기도 하다. 머지않아 송과체의 기능에 대해서도 이렇게 명쾌한 과학적 규명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8. 송과체와 우리의 웰빙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 몸의 면역기능은 365일 24시간 작동하면서, 우리 건강이 크게 손상당하는 일이 없도록 살핀다. 일상적으로도 몸을 지키지만,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어떤 유해요인이 심각하게 몸을 침범할 경우, 총력을 기울여 우리 몸을 보호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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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지금까지 우리가 추론해왔듯이, 송과체가 외부에 존재하는 환경요인을 판단하여 우리 몸의 반응을 조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여기에도 면역기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차원이 있고, 우리 인생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판단의 차원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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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예를 생각해보자. 이사 가야 할 경우 새 집을 구할 때 어떻게 집을 정할까? 우선 대충 자기가 이사 가고 싶은 지역을 정한 후 그곳 부동산 소개소에 가서, 가지격과 크기에 맞추어 몇 군데 둘러볼 것이다. 그 몇 군데 선택지 중에서 최종적으로 이거다, 싶은 그 마지막 결정을 내릴 때 어떤 요인이 작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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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그 중에서 뭔가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 그 집을 정하게 될 것이다. 이럴 때 왜 그 집이 마음에 드는지 누군가가 묻는다면 뭐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저 그 집이 편안해 보인다든지,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든지 하는 막연한 느낌에서 결정을 내릴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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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종류의 막연한 느낌이 인생에서 정말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다음은 여러분의 ‘느낌’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사진이다. 여러분이 만일 아래 사진이 보여주는 두 곳 중 한 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어느 쪽을 택하고 싶은지?

7 땅 비교

1번은 한국에서 최고 명당 중 하나로 소문난 마을의 전경이다. 2번은 최근 문제가 있는 땅으로 매스컴을 몇 번 탄 적이 있던 곳의 사진이다. 1번은 오랜 충적토로 안정된 지기 패턴을 갖고 있는 곳이고, 2번은 금속성 광물이 포함된 암반이 많아 지전류 교란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두 사진이 보여주는 공간이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느껴졌다면, 그리고 1번이 왠지 더 편안해 보인다고 느끼셨다면, 외부 환경 요인에서 오는 파동에 대해 적절한 판단을 하는 능력이 살아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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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의 중요성은 여러 문화권에서 오랜 세월 동안 강조되어 왔다. 성서와 같은 오랜 기록에서부터 극히 최근까지의 역사서에서도, 인간은 어떤 큰일을 새로 시작하려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것 중 하나가 그 일을 일구어낼 수 있는 좋은 터전을 찾는 일이다. 지극히 당연하다. 인간의 몸/마음은 전기적 신호와 화학적 신호가 끊임없이 교환된 정교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우리가 몸을 담는 외부 공간의 파동은 이런 신체의 파동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어, 이 파동들의 작용을 강화하거나 아니면 교란시켜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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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well-being이란 말은 ‘잘 well 존재하는 것 being’을 뜻한다. 우리가 몸/마음 모두 잘 존재해나가려면, 무엇보다 그렇게 잘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찾아 거기 몸을 담든 게 제일 우선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공간을 찾아내는 능력을 우리 모두 갖고 있으며, 우리의 신체 기관 중 송과체가 그런 능력에 관한 일을 주관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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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겨진다’라고 말하면서 답답하다. 이렇게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우린 아직 사회적으로 합의된 명확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밝혀주어야 할 관련 전문가들이 이 문제에 대해 모르거나 알더라도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시각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문제는 현대 생명과학이 상당히 취약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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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앞으로 더욱 더 많은 관심이 모아지리라고 본다. 21세기 사람들에겐 그게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영역 중 많은 부분이 지금까지는 진지한 탐구의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우리의 진정한 ‘웰 비잉’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뇌과학 등의 발달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인체의 작용을 정교하게 포착할 수 있는 기술이 상당히 발전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탐구가 훨씬 더 쉬워지고 또 그 결과가 쉽게 공유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7 송과체와 일상생활

중국 명나라 나관중의 유명한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다.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유비의 진영 근처에 매복하였다. 높은 성채에 올라 성 밖을 바라다보던 유비의 모사 제갈량은 “서쪽 숲에 살기가 어려 있으니 조조의 군사가 숨어 있는 게 분명하다”고 하면서, 유비와 군사들을 밤중에 몰래 성 뒷문으로 빠져나가 동쪽 오솔길로 이동하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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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라는 건 어떻게 해야 보이는 걸까? 눈에 보이는 게 아닌 건 확실하다. 제갈량은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도 파악하는 기량을 가졌을 정도니까, 천하의 두뇌로 이름을 전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제갈량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파동으로서 인식하는 송과체가 두뇌의 다른 판단 보조체계와 협동해서 일하는 구조가 잘 되어 있었나 보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어떤 문화권에서는 ‘제3의 눈’이 발달한 사람이라고 할 거다. 송과체가 세상적 성공과 파워의 상징이 되는 것은 이런 맥락이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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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과체는 또한 영성spirituality의 상징이기도 하다. 데카르트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송과체를 가리켜 우리의 영혼spirit, soul이 깃든 자리라고 말했다. 충분히 그럴 것 같다. 과거 여러 시대, 여러 사회에서 그런 말들이 계속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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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 이런 정도까지 과학적 논거로 얘기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 송과체 관련 담론들이 신비주의적인 얘기처럼 보이기 쉬운 것은 이렇게 영성spirituality을 논리적으로 논하기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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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일 송과체가 앞서 보아왔던 것처럼, 외부 대상에 대한 판단을 하는 기관이라면, 그 기능이 세상적 성공이나 영성처럼 특별한 일에만 관계하는 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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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면역체계의 센서세포처럼, 365일 24시간 작동하는 기관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함으로써, 역시 면역체계가 그렇듯이, 우리가 여러 가지 일상생활을 순조롭게 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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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능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나타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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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예로, ‘눈치’라는 것을 들 수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고 말로 표현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상대방의 기분을 알아채서 거기 맞추는 능력에 관련된 것이다. ‘눈치가 있다’ 혹은 ‘없다’는 식으로 사람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우리는 꼭 눈에 보이거나 적극적으로 의식하게 되지 않은 변화에 대해서도 거의 무의식적으로 맞추어 행동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 능력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서, 일상적으로 필요하며 동시에 대단히 중요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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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심리학 용어로 말하자면 ‘사회적 감수성’social perceptiveness이라고 하는데, 이 능력을 측정하는 테스트도 있다. 그런 테스트 중 한 가지 예를 보자.

7 눈치

위 사진은 시각적 지표로는 큰 차이가 없다. 눈의 생김새와 화장법의 차이로, 이 사진의 주인공들이 서로 다른 사람이며 왼쪽 둘은 여자일 것 같고 오른쪽 둘은 남자일 것 같다는 짐작은 가능하게 해준다. 그밖에는 시각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긴 정말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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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이 사진의 주인공들이 각각 서로 다른 마음 상태에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한 번 맞추어보자. 테스트에서 제시한 정답은 1번이 ‘관심 있음’interested, 2번 ‘친절함’friendly, 3번 ‘아련한 꿈에 잠김’fantasizing, 4번 ‘생각에 잠김’thoughtful이다. 대충 수긍이 가는 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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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눈빛만 보고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을까? 이것은 시각 지표가 아니므로 시신경이 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적’인 논증 방법으로는 이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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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일 우리가 외부 대상으로부터 오는 파동을 캡쳐하여 우리 자신을 중심으로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이건 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정서 상태에 따라 바로바로 뇌에서 나오는 파동의 패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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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달라진 파동이 우리 몸의 어떤 장치에 의해 인식되어, 거기 맞추어 즉각적으로 우리 몸의 반응이 결정되면서 우리의 인식과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았듯이, 만일 그런 능력을 전담하는 기관이 있다면, 그것은 송과체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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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송과체가 갖고 있을 것 같은 기능

몸 안에 들어온 물질에 대응하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센서 세포가 혈관 내의 물질에 대해 판단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외부에 존재하는 물질이 우리 몸에 주는 영향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직접 물질적으로 접촉되기 이전에 그 성질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 물질이 내는 에너지(파동)의 패턴을 가지고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물질은 거리를 극복할 수 없지만 파동은 먼 거리도 순식간에 커버하며, 심지어는 물질적 장벽을 뚫고 들어오는 성질의 파동도 무수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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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과체는 외부에 존재하면서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물질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마치 센서 세포가 면역기능에서 하는 것 같은 일을 담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구강에서 바로 송과체로, 혹은 제3의 눈, 즉 미간의 위치로부터 바로 송과체로 파동이 전달되어 거기서 그 대상이 우리 몸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판별되는 건 아닐까?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혹은 새로운 자극이 주어지는 순간 송과체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은 이런 추정을 정당화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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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렇다면, 마치 센서세포가 혈관 안에서 수상한 물질을 만나면 다른 세포들에게 알려 대응을 하게 만들 듯이, 송과체도 그렇게 행동개시를 지시할 협력기관이 필요할 것이다. 거기 아주 적합한 후보자가 바로 시상하부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앞서 보았듯이 시상하부는 좀 더 앞쪽으로, 온 몸의 신경계와 연계되는 위치에 있다. 원래 사령탑은 좀 더 안전한 후방으로 있고, 행동대원은 현장에 있는 법이다.

6 송과체와 시상하부
그렇다면 송과체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이라는 동서고금의 기록에 어느 정도 상응하는 설명이 된다. 물론 송과체의 기능은 시상하부와의 밀접한 협동 속에서만 의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옛날의 가르침에서는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묶어 중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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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학에서 말하는 ‘상단전’이 그랬고, 이집트 벽화에서 파워와 능력을 상징하는 ‘호루스의 눈’이 그랬다. 미라를 만드느라 해부경험이 많았을 이집트에서 숭상했던 ‘호루스의 눈’은 송과체와 시상하부가 있는 뇌의 중심부를 해부학적으로 본 모양과 사실적으로 많이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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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과체와 시상하부의 협동이 아주 잘 일어나는 사람이라면, 눈으로 보거나 심지어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한 일들에 대해 순간순간 올바른 판단을 해갈 수 있기 때문에, 큰 실수를 하는 일이 없게 되고 따라서 아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제3의 눈이 이 지상의 파워에서 영적 능력까지 상징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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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비주의자가 아니다. 인간과 세상에 대해 일어나는 일이라면, 어느 것이든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사실fact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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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문적 과학자도 아니다. 이걸 새로운 발견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과학적 사고를 하도록 기초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이런 관련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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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설명하면 송과체에 대한 과거로부터의 많은 기록들이 말하는 사실과 부합되는 것을 보니까 참 재미있다.

5 송과체와 시상하부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환경 속에서 우리 몸을 지키기 위해,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면역 시스템, 그 기본은 어떤 대상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해가 되는 것인지 판단하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면역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은 일단 어떤 물질이 우리 몸 안에 들어왔을 때, 즉 혈관을 떠돌다가 센서세포에게 들켰을 때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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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충분할까? 우리 몸 바깥에 있는 대상에 대해 우리의 세포들이 판단할 필요는 없는 걸까?
당연히 있을 것이다. 우선 우리의 의식이 이 부분에 대해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어떤 대상이 어쩐지 기분이 안 좋다고 생각하면 그 대상을 피한다. 반대로 어쩐지 마음에 들면 접근한다. 그것이 어떤 장소든,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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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생각하지 않아도 자기도 모르게 특정 대상에 대한 구별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음식에 대한 판단도 그런 경우가 많다. 어떤 음식은 입에 갖다 대는 순간 바로 뱉게 된다. “이 음식은 맛없는 거 보니까 내 몸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뱉어버려야지!”하고 생각할 새도 없이. 또는 어떤 장소에 갔을 때 그 장소가 쾌적하면, ‘아 여기 쾌적하다. 좀 더 있어야지’하는 생각이 들지 않아도 그냥 거기 더 오래 머물러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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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별에는 시각적인 측면도 있다. 우리는 눈으로 보기 좋은 것에는 자동적으로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시각적인 것과 상관없는 측면도 있다. 대표적인 게 음식. 아무리 보기에 먹음직해보여도 맛없는 건 맛이 없다. 혹은 아주 예쁘게 꾸며 새로 오픈한 찻집에 들어갈 때는 “어머, 여기 예쁘다. 여기서 차 마시자” 하고 들어갔다가도 좀 앉아 있으면 온 몸이 긴장되며 불편해질 수 있다. 그러면 의식적으로 “예쁜 줄 알았는데 불편하네. 뭔가 안 좋은 요소가 있나보다, 나가자!”하고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왠지 나가고 싶어, 적당한 핑계거리만 있으면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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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판단과, 또 거기 따른 행동에 대한 지시는 어디서 하는 것일까? 일단 우리가 맛을 느끼게 하는 식욕중추와, 뭔가를 좋아하게 만드는 쾌감 호르몬, 혹은 싫어서 기피하게 만드는 투쟁-도피 호르몬이 만들어지는 곳은 뇌과학에서 밝혀져 있다. 그것은 ‘시상하부’라고 불리는 부분이다.

5 시상하부와 송과체

시상하부는 송과체와 마찬가지로 원시뇌의 일부로 송과체 바로 앞 쪽에 존재한다. 쾌감 호르몬인 도파민, 옥시토신 등을 생성할 뿐 아니라 투쟁-도피 호르몬인 아드레날린 분비를 조절한다.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뇌의 기능을 신경계에 연결시켜, 온 몸의 작용이 일어나게 해주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에 따라 음식 섭취, 성적 욕구 및 행동, 체온 유지, 음식에 대한 느낌과 행동, 수면과 휴식에 대한 느낌과 행동, 바이오리듬 조절 등 우리의 생명과정에서 가장 기초적인 작용들에 거의 다 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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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송과체에 대해서는 멜라토닌 호르몬과 약간의 신경전달물질을 생성한다는 것 외에는 거의 밝혀져 있지 않다. 위치로 보아서는 송과체가 시상하부보다 더 안전한 곳, 더욱 핵심적인 곳에 있어서, 뭔가 그런 역할을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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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송과체가 하는 일이 시상하부와는 달리 물질적인 차원으로 잘 표현되지 않아서가 아닐까? 만일 송과체가 파동으로 대상을 식별한다면, 물질적 해부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현대 의과학은 이를 잘 포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제는 상당히 밝혀진 ‘경락’의 경우에서처럼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포스팅)

4 면역기능과 송과체

송과체의 기능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 실마리가 될 만한 팩트는, 환경과 우리의 내면을 연결하는 우리 신체 고유의 방식이다. 현대의 과학은 그것을 신경계, 내분비계, 면역계라는 이름을 써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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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몸/마음은 환경 속을 살아간다.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우리의 몸/마음은 이렇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늘 평형을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몸/마음과 환경에 경계를 두고, 환경에서 오는 요인이 우리 내부를 교란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완충하고 조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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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신경계는 외부의 변화·자극을 내부에 전달하고, 내분비계는 이에 적응하기 위해 몸/마음에 필요한 준비를 시키며, 면역계는 그런 변화들이 우리 몸/마음 안에 들어와 생명현상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대응하고, 손상을 입었을 경우엔 복구하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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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서 요즘 특히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면역계가 하는 일이다. 영어로는 ‘이뮤니티 immunity‘라고 해서, 어원적으로 보면 뭔가 안 좋은 일로부터 면해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단어의 번역어로 나쁜 병을 면하게 한다는 뜻의 한자어 ‘면역(免疫)’이 근대 초기부터 사용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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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 기능의 기본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과 ‘자신에게 해로운 것’을 구분하는 일이다. 우리의 신체 내부에는 무수히 많은 물질들이 존재한다. 이 물질 가운데서 우리 몸 안에서 생명과정을 위해 존재하거나 만들어지는 것, 외부에서 오더라도 물이나 산소, 혹은 영양물질처럼 우리 생명에 도움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면역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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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몸 안에서 우리의 생명에 해로운 것이 발견되면, 그때부터 면역기능이 활발히 작동하기 시작한다.

4 면역체계

예를 들어서 혈관 속을 떠돌면서 순찰을 하던 센서 세포가 수상한 단백질 조각을 발견하면, 그 조각의 샘플을 감식 세포에 보내서 이것이 외부에서 들어 온 다른 어떤 유해한 생명체, 혹은 그런 생명체의 일부인지를 판단하게 한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처럼 우리 몸의 에너지를 빼앗는 병원 미생물일 확률이 높은 것으로 판정되면, 그때부터 이를 퇴치하기 위한 활동이 전개된다. 킬러 세포들이 병원 미생물에 세포 독을 쏘아 죽이며, 이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체온을 올려, 즉 열을 내서 일망타진하려 한다. 한바탕의 전투 후에 죽은 병원균의 사체는 청소부 세포인 마크로퍼지가 깨끗이 청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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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 화학물질에 대응하는 면역과정도 비슷한데, 역시 센서 세포가 혈관 속에서 수상한 화학물질을 감지하면, 그 화학물질이 우리 몸에서 만든 것인지 아니면 외부에서 들어온 유해물질인지 판단하는 데서 시작한다. 뱀이나 벌레 등에 물려 들어오게 된 생물독의 경우엔 혈관을 좁혀 독이 돌지 않도록 하고 해독물질을 만들어 집중시킨다. 잘 모르는 화학물질은 면역단백질인 IgB등이 작용해서 히스타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메신저로 보내 가까운 근육을 움직여 몸 바깥으로 배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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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환경 속에서 우리 몸을 보호하는 면역기능의 출발점은 우리 몸에 들어 온 어떤 대상이 자신의  삶에 이로운 것인지 해로운 것인지를 구분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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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몸/마음은 어떤 대상이 생명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해가 되는지 판단할 때, 반드시 그 범위가 몸 안에 들어온 물질에만 국한될까? 우리 몸 안까지 실제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가까이 있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3 송과체 다시보기

이렇게 최근 들어 송과체에 대한 컨텐츠들이 인터넷 세계에서 무한히 쏟아져 나오며, 우리들의 지식을 더 풍부하게 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볼 때 송과체에 대한 최근의 대안적 담론들은 지나치게 신비주의에 흐르는 경향도 없지 않다. 앞서 본 ‘제3의 눈’에 대한 현대의 이미지들에서도 그런 신비주의적 경향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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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송과체는 엄연히 실재하는 우리 몸의 한 기관이다. 송과체가 그렇게 우리의 뇌 안에서도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심적이며, 가장 보호 받을 수 있는 위치에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분명히 우리 몸에서 중심적이며, 중요하고,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점들은 신비주의적이며 직관적인 지식 외에도 객관적으로 충분히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송과체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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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뇌의 활동을 파동의 움직임으로 측정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뇌과학’ 분야의 연구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 연구 중에서 사람이 음식을 먹거나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송과체 부분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밝힌 연구도 있다. 이것을 지금까지 밝혀진 인간의 생리에 대한 다른 지식에 비추어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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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과체가 자리 잡고 있는 위치는 뇌 가운데서도 ‘원시뇌’라고 하여, 가장 먼저 형성된 부분에 속한다. 원시뇌란 진화생물학적으로 볼 때 가장 초기에 나타난 단순한 생명체에서부터 있었던 부분이다. (물론 이건 ‘뇌’라는 기관이 따로 분화되어 있는 생물의 경우에 대한 얘기다. 뇌가 없는 생물도 많으니까. 뇌가 없는 생물은 ‘장(腸)’이 뇌의 역할을 겸한다.) 생물이 진화하여 더 복잡한 기능이 추가되면 그 위쪽에 새로운 층이 추가된다. 마치 진주조개 껍질에 붙은 핵 위로 진주물질의 층이 계속 덮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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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뇌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생명체로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예를 들면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는 신체의 리듬, 호흡, 생식, 출산 등이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런 것만큼 중요하고 기초적인 기능에 어떤 것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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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상이, 혹은 환경 요인이, 자신에게 이로운 것인가 아니면 해로운 것인가 판단하는 능력은 어떨까?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요소와 맞닥뜨려 살지 않을 수 없는 생물체로서, 이건 아주 중요한 능력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새로운 음식, 새로운 사람, 새롭게 주어진 환경 요인과 마주했을 때 우리 몸에서 이에 대해 반응하기 전에 먼저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9 brainscan
만일 그런 판단을 전담하는 기관이 있어야 한다면, 송과체보다 더 적합한 기관을 찾기도 어려울 것 같다. 위치를 봐서도 그럴 것 같고, 전통 사회에서 어디서나 송과체를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간주해왔다는 사실과도 어느 정도 맥이 닿는다.  내가 아는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도, 이 사실을 반증해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러시아 생체물리학biophysics 분야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음식을 입에 갖다 대는 순간 송과체가 활성화되며 신호물질이 식욕중추를 자극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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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본문을 읽을 수 없고 영어로 아주 짧게, 웬만한 논문 요약보다 훨씬 더 짧게 내용을 소개한 글만 읽을 수 있어서, 더 이상 자세한 것을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몸에서 일어나는 유사한 반응과 유추해보면, 그 과정이 어느 정도 이해될 것 같기도 하다.

2 송과체와 제3의 눈

구글을 뒤져보면, ‘송과체/pineal gland’와 가장 많이 연관되는 단어는 ’제3의 눈/the Third Eye’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앞 그림에서 보았듯이, 송과체의 위치를 바깥에서 보는 좌표로 말하자면, 앞에서 보았을 때 양미간, 즉 눈썹과 눈썹 사이, 옆에서 보았을 때 뇌의 중앙에서 약간 뒤쪽으로 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양미간, 혹은 그보다 좀 더 위쪽인 이마에 빛이 나거나 눈이 하나 더 있는 이미지는 여러 문화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요즘 송과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양미간에 눈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은 이미지를 많이 사용한다.

8 제3의 눈 고대 및 현대
이것은 송과체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실체들을 감지하는 기관이라는 주장과 관련된다. 사실 인간의 시각은 대단히 제한적이다. 이 세상에는 무한히 다양한 파동(에너지)가 가득한데, 그 중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파장이 380~780nm(나노미터)에 해당되는 에너지뿐이다. 그야말로 태산의 티끌만큼도 되지 않는다. 인간을 외부 환경과 연결시켜주는 감각기관에는 시각 외에도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이 있으며, 이것을 통틀어서 ‘오감(五感)’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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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상적으로 이용되는 다섯 가지 감각 외에도, ‘육감(六感)’, 즉 여섯 번째의 감각이 있다고 하는 말은 흔히들 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육감이 어떤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 외부의 신호를 우리의 주관에 연결시켜주는지에 대해서는 설도 분분할 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대안적 담론에서 송과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것이 시각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제3의 눈이며, 여섯 번째의 감각기관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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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과체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많이 눈에 띠는 설명은, 이것이 인간의 영성과 관련되어 있으며, 땅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하는 육신을 하늘에 연결시켜주는 기관이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동양철학(의학)에서 말하는 ‘상단전’인데, 인체의 에너지를 정(精)·기(氣)·신(神)으로 구분했을 때, 영적인 차원의 에너지인 신(神)이 자리하는 장소라고 한다. 인도의 전통철학(의학)에서 말하는 인체의 에너지 중심 7개의 차크라 중 6번째의 ‘안자’Anja 차크라에 해당되며, 이 차크라는 영적 투시력을 담당하는 곳이다. 근대 과학자 중 눈에 띠게 송과체에 관심을 보였던 데카르트는 송과체가 ‘영혼soul의 자리’라고 했다. 이상은 과거로부터 전해져 오는 지식이지만 현대에서도 대안의학에서 중심이 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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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생물학에서는 송과체가 빛의 자극을 받아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을 생성하여, 인간의 신체 리듬을 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힌 외에, 최근에는 디메틸트립타민dimethyltryptamine이라는 신경물질도 생성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물질은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한에 있어서는 인체가 만들어내는 유일한 환각제이다. 이것이 만들어지는 정도에 따라 인간과 유사한 환상적 존재가 보이기도 하고, 자신과 환경의 경계가 사라지는 일체감을 느끼는 등 다양한 환각 현상을 체험한다고 한다.

8 1달러 지폐
이런 초현실적 체험은 종종 ‘지혜’ 및 ‘권력’와 관련된다. 즉 제3의 눈, 시각을 갖춘 두 개의 눈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이 눈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은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담은 대표적인 아이콘이 미국의 1달러 지폐에 나오는 피라미드 꼭대기의 눈이다. 공식적으로 그렇게 밝힌건 아니지만.

1 송과체의 어제와 오늘

송과(松果), 즉 솔방울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기관은 그야말로 작은 솔방울처럼 생겼다. 영어로도 ‘피니얼 글랜드’pineal gland라고 해서, 솔방울처럼 생긴 분비선이라는 뜻을 갖는다.

특이한 점은 두뇌의 모든 기관이 좌뇌, 아니면 우뇌 쪽에 위치하면서 각각의 뇌와 관련되는 기능을 하는 데 비해서 송과체는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에서 가장 먼저 발달하기 시작한 부분인 원시뇌 바로 밑, 뇌에서 가장 깊은 부분에서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송과체는, 그런 위치만 보아도 뇌에서 가장 중심적인 기능을 감당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될 정도다.

 7 송과체 1

사실 과거엔 그런 대접을 받아왔다. 송과체를 상징하는 아이콘들은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중국 등 세계의 고대 유적지 벽화와 조각, 건물 장식에서 자주 발견된다. 이런 상징들은 인간과 세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미이라 만들기 등으로 해부의 경험이 많았을 이집트에서는 고대 벽화에 해부학적으로 상당히 사실적인 모습에 가까운 송과체의 아이콘이 발견되는데, 이 아이콘은 ‘호루스의 눈’(Eye of Horus)이라고 하여, 보호·최고의 권력·건강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7 호루스의 눈

뿐만 아니라, 과거 어느 시대에서나 이 분야에서 뛰어난 경지를 이룬 사람들이라면, 송과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인지 가르쳐왔다. 서양에서는 이오니아 철학자들로부터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체에 대한 연구에서 송과체는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간주되어 왔었다. 현대 의학 체계가 세계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이전까지는.

7 송과체

동양의학에서는 현대의 서양의학처럼 뇌를 해부한 경험이 많지 않을 것이어서, 정확히 기관명으로 집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에너지를 느끼는 기감이 발달한 옛 의학자들은 송과체에 해당되는 부분을 ‘상단전(上丹田)’이라고 불렀다. 아시다시피 상단전은 인체 에너지 운행의 중심인 3 단전(상단전·중단전·하단전) 중 제일 위에 있는 것으로서, 우리의 영적 기운이 이 세상의 에너지와 만나는 곳으로 간주되어 왔다.

7 상단전

그런데 ‘몸’에 대한 관심이 다른 어느 시기보다 높아지고 있는 21세기의 인간인 우리는 ‘송과체’에 대해 잘 모른다. 해부학 지식의 수준이 높아 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저 뇌의 부속 기관 중 하나로 인지할 뿐이지, 그게 우리 생명과정에서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건 주류 해부학 및 생리학에서의 얘기고, 구글링을 해보면, 아직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인체 담론 가운데 송과체는 엄청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