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21세기

4 네팔 지진, 칼부코 화산… 한반도 지진까지?

이야기의 흐름 상, 이번 포스팅에서는 과거에 지구가 어떤 변화과정을 거쳐 왔는지 개관해야 할 테다. 하지만 계획을 바꾸어서 여기서 지구변동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하려 한다. 이 지구변동 관련 포스팅들은 <지구변화 바라보기와 생각하기> 카테고리 밑에도 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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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저녁 뉴스의 화면은 4월 26일 발생한 네팔 지진의 피해가 커져가는 참상을 보여주고, 이어서 4월 23일 폭발한 칠레 칼부코 화산으로 인해 이어지는 피해와 주민의 불안감을 보여주었다. 나의 예상으론, 그 다음에 왜 이렇게 요즘엔 자연재해가 잦은가? 하는 문제에 대해 좀 더 분석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TV 보도는 그렇게 참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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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에 대한 요즘 한국 매스컴의 태도는 (그리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 매스컴의 태도는) 근대기 서구가 자연에 대해 반응했던 것과 시종 같은 패턴을 보여준다. 자연을 ‘정복’했다고 떠들든지, 인간이 자연을 망치고 있다고 하여, 특정 집단을 비난하든지, 아니면 최소한의 보도를 하고 나서 아예 논의를 피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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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생각엔 이렇게 할 문제가 아니다. 자연이 아무리 인간으로서 이해하지 못할 상태를 보인다 하더라도, 좀 더 근본적으로 분석해서 자연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그런 자연 속에서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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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원래 지각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그동안 비교적 안전한 지대였던 우리나라와 같은 곳에서도 백두산 폭발이 임박해 있고, 동·서해 연안에 지진이 발생하는 등, 지각활동 및 그로 인한 자연재해의 발생이 점점 더 심해진다는 것을 뚜렷이 느낄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런 예상치 못했던 자연재해가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지역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날 저녁 뉴스에서도, 네팔 지진 참상을 보여주고 난 다음, 그 여파가 중국에 미칠지 모르는 불안감을 말하는 중국 지진 전문가의 코멘트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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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떤 것에 대해 잘 모르면, 그 대상에 대한 공포감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 지구상에 사는 우리들은 이제 이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침 이 문제는 21세기의 영성을 논하기 위해 지구를 환경역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 글의 논지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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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그래프에서도 보았지만, 지구 전체가 사회적으로나 자연적으로나 엄청난 가속적 변화의 시기에 들어가 있다. 이런 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표면 밑의 구조인 지각판의 운동에 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그보다는, 지구생명권의 근간을 이루는 지각구조 자체가 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비슷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게 더 맞는지도 모른다. 다음 그래프들을 보자.

4 지각활동에 따른 자연재해

왼쪽은 1974년부터 현재까지, 진도 4이상의 지진이 일어난 추이에 비추어 2047년까지 예측한 그래프다. 가운데는 강도별로 화산 발생 추이를 1900년부터 2000년까지 보여주고 있는데, 제일 위쪽 자주색 부분이 화산 발생 총계이다. 오른쪽은 1900년부터 2004년까지 자연재해 발생 추이를 보여주는데, 붉은 부분은 지진·해일·화산폭발을 포함한 자연재해 총계, 파란 부분은 태풍, 토네이도 등 풍해에 관한 총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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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래프에서 녹색 사각형으로 둘러싼 부분이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추이다. 이것을 이렇게 비교해보자.

4 지구변동 비교

거의 정확하게 지각활동, 즉 지구의 보다 근본적인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동요와 같은 모양으로 인간 사회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진에 대한 2047년까지의 예측을 보여주는 그래프에서, 이런 추세는 앞으로 한동안 더욱 심해져갈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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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변화가 생기는 걸까?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3 위대한 가속도의 시대

21세기인 현재, 세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간단하게, 확정적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논점은 추릴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다루고 싶은 것은 “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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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지구 변화 바라보기와 생각하기> 카테고리에서 다루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논의 전개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좀 더 간략히 소개하기로 한다. 이 문제에 대한 포스팅을 더 보고 싶은 분은 위 카테고리 참조.

1 그래프들 2

위 그래프는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연구하는 기관인 미국 소재 IGBP( International Geosphere Biosphere Programme, 국제 지리권·생물권 연구소)에서 제공한 것이다. 이 기관에서 제시한 많은 그래프 가운데, 해외관광·비료사용·해외직접투자·댐 건설·물 사용량·종이 사용량·자동차 생산 부분을 보여준다. 1750년에 시작하여, 2000년까지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 그래프들을 보면, 20세기 후반부터 지구가 격동의 변화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느끼는 우리의 느낌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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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활동은 당연히 환경, 즉 자연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음 그래프들은 대기 중 메탄 농도·오존층 파괴·해양생태계 파괴·연안 질소 유입량·삼림 감소·생물종 멸종·대기 중 이산화질소 농도의 변화를 보여준다.

1 그래프들 4

이 그래프를 보고 알게 되는 사실들을 정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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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
둘째, 그 변화는 어느 부문에서나 대체로 비슷한 패턴으로 진전되고 있다는 것
셋째, 어느 부문의 변화든 20세기에 들어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며 1970년 무렵 이후부터는 더욱 가속화되어, 현재는 한 치 앞날을 예견하기 힘들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
넷째, 모든 변화의 방향은 인간으로 하여금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은 자원을 쓰며 더 큰 영향을 환경에 남기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
다섯째, 현재로 보아선 이 추세가 지속될 것 같다는 것
등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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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래프의 출처인 위키피디아에서는 이런 추세들에 “위대한 가속도”Great Acceleration라는 제명을 붙였다. 이렇게 전면적이고 점점 더 속도가 빨라지는 변화는 분명 우리 시대의 중요한 특징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사는 시대에 대해 생각할 때 이 변화의 추세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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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점점 더 빨라지는 속도로 일어나는 변화는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 것인가? 그리고 현재 우리의 관심사인 ‘영성’은 이 변화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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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선 좀 더 과거의 모습을 볼 필요가 있다. 위의 그래프들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변화들이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연속선상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좀 더 시기의 폭을 넓게 잡아보면, 전체적인 변화의 모습이 보일지도 모른다.

2 새로운 환경역사를 시도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앞서 말했듯이 21세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환경역사’environmental history의 관점에 크게 의존하려 한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를 ‘환경’과의 상호작용이라는 과정 속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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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역사적 연구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요즘 말하는 환경역사를 위한 큰 문을 열어준 것은 1994년 클라이브 폰팅Clive Ponting의 『녹색세계사』A Green History of the World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이 분야의 연구가 더욱 활성화되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환경역사>라는 학문적 장르가 생겨나서 세계 각지에서 관련 학계들도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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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영성을 논하는 데 있어서 환경을 이해해야 하는가? 나는 영성이든 지성이든, 심지어 감성조차도 그것이 인간을 통해 발현되는 방식, 혹은 그것을 인간이 인지하는 방식에는 환경이라는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아니 인간을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있어서 환경은 존재방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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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서, 인류의 탄생도 환경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약 800만 년 전,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 중간쯤에서 지각변동으로 인해 큰 단층이 생기면서 이 지역을 남북으로 달려 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를 나누는 지구대가 생겼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 대륙 서쪽의 대서양으로부터 오는 습기를 많이 머금은 공기가 지구대에 부딪치면서 동아프리카는 건조한 사바나 기후로 변해갔다.

2 아프리카 지구대

이에 따라 이전에 습도가 충분했을 때 형성되었던 열대림이 사라지면서, 그곳을 서식지로 하던 원숭이들이 멸종해갔다. 그 중 일부가 나무가 사라진 건조기후 생태계에 적응하여 두 발로 걸으면서 잡식성이 되었고, 나중에 인간의 조상이 되었다. 이 한 가지 예만 보아도, 환경은 그 안에 사는 생명체들의 삶에 엄청난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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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논하면서 ‘환경’의 변수를 강조하면, 과거(근대기 동안)에는 ‘결정론’determinism이 아니냐는 비판을 듣곤 했다. 즉 환경이 인간 존재방식을 결정한다면, 거기엔 인간의 의지가 작용할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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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입장은 환경의 변화가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의 행동에 근본적이며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거기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개체의 운명이 달라지며, 그 결과의 종합으로서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운명도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환경은 인간에 의해 보호받거나 아니면 파괴당하는 수동적인 실체가 아니라 인간 삶의 모습을 규정하고 또 인간의 삶에 의해 변형되는 동등한 상호작용의 주체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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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이 지금까지 주류를 이루어왔던 환경담론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담론들은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하는 등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주로 조명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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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이 글에는 지금까지의 일반적 환경담론 뿐 아니라, 대부분의 환경역사와도 기본적으로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이 글에서는 기존의 환경역사보다 시각을 한 수준 더 위로 올려, 지구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뿐 아니라, 그런 지구환경을 가능하게 한 우주의 환경변화까지 통합해서 보고자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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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환경담론에서도, 특히 ‘소빙하기’의 기후변화를 논하는 연구들에서는 지구 외의 우주적 실체인 태양의 영향력 같은 것을 부분적으로 논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처음부터 지구의 환경 상태를 우주라는 더 큰 환경 속의 변화 과정이라는 맥락 속에서 보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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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일상의 인식 차원보다 한 수준 위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 ‘영성’을 논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최근 지구환경 변화에 대한 연구들이 진전되면서, 그런 지구환경 변화를 초래한 우주 환경의 변화에 대한 연구 성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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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해되었으면 우리는 이제, ‘영성이 21세기에 있어서 이 지구상 생명체인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탐구하기 위한 시간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된 것 같다.

1 쓰기에 앞서

이 카테고리를 통해 앞으로 쓰게 될 글은 <공동체영성모임>이라는 그룹에서 한 강연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21세기에 있어서 공동체와 영성”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해달라고 제안 받았을 때 나는 기쁘기도 했고 부담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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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공동체, 영성- 이 키워드들은 그동안 나의 관심사, 아니 내가 삶을 통해 배우게 된 것들을 가장 잘 요약할 수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소중한 나눔의 기회를 갖게 되어 기뻤고, 동시에 이 키워드에 담길 수 있는 그 풍부한 내용들을 단 몇 시간의 강의, 혹은 몇 페이지의 강연문에 어떻게 담을 것인가 곤혹스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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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회는 언제나 소중한 것이다. 그날 모임에서 21세기 영성의 비전을 함께 나누어주신 참가자들께 감사드린다. 그로 인해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많이 접한 사람들, 또 많이 접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정리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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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을 주제로 얘기할 때 조심스러워지는 부분이 있다. 적어도 지난 2~300년간의 근대기 동안, ‘영성’은 진지한 과학적 탐구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왔으며, 일상의 대화 주제로서도 정당한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고 본다. 따라서 자칫하면 영성 담론은 ‘말 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의 대화’가 될 수도 있고, 참여자의 폭이 넓어지면 그 중 많은 사람들에게 생뚱맞은 얘기로 들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특히 역점을 두었던 부분에 대해 미리 얘기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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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영성’에 대해 얘기할 때 필요한 지식을 구성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영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적 탐구의 방법론을 좀 더 융통성 있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근대기 동안 우리는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추론’만이 우리를 진리에 데려다준다는 믿음을 확고히 해왔다. 하지만 영성은 이성과는 전혀 다른 영역의 정신 작용이므로, 과학적인 추론만으로는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데 한계가 당연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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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권위의 백과사전인 엔싸이클로피디아 브리태니커Encyclopedia Britannica에 의하면 지식은 그것을 얻는 방식에 따라 크게 3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경험, 즉 관찰에 의하여 얻는 것이며, 두 번째는 이성, 즉 추론에 의해서 얻는 것이고, 세 번째가 직관, 즉 영감에 의해서 얻는 것이라고 한다. 이 글은 이 세 가지 방법을 모두 탄력적으로 이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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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이 글은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글쓰기라는 것이다. ‘영성’을 중시하게 되었다는 21세기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1세기의 특징을 이해해야 하고, 그러려면 그 이전 세기와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한다. 이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은 역사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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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글에서는 ‘환경역사’의 방법론을 따를 것인데, 여기 대해선 다음 포스팅에서 좀 더 자세히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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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나는 ‘영성’이라는, 보통 정신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영역도, 우리의 물질적 존재 기반과 깊이 관련된다고 믿는다. 이 글에서도 그런 관련성의 상호작용을 조명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순전히 형이상학적인 글도, 100% 역사적인 글도 아니다. 맥락의 필요에 따라 자연과학·역사·사회과학적 성과들이 통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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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의 입장은 좋게 말하면 전일주의holism, 혹은 다학문적 접근interdisciplinary approach, 심지어 통섭consilience과 비슷한 거라고 할 수 있을 거고, 부정적으로 보자면 아마추어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든 나는 이렇게 해야 세상 일이 제대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