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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송과체와 포스트모더니티

앞으로 이 블로그에는 음식, 건강, 주거환경, 지구 시스템 변화, 출산 및 육아, 교육, 예술, 역사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글을 포스팅해갈 계획이다. 이 모두가 <About>에서 밝혔듯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지구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인가 함께 생각해볼 거리를 던지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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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간단하게 답을 주기 어려운 문제고, 나 혼자서 온전한 답을 내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나도 지금 더듬어가고 있는 중이고, 그 길을 함께 가는 사람이 많다면 더 든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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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20세기까지 그렇게나 자랑스러워했던 소위 ‘(근)현대적 지식’modern knowledge으로부터 우리는 근본적으로 방향 선회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19세기 무렵부터, 지구 전체적으로는 20세기 후반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한 이 현대적 지식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생각’thinking 및 그 생각의 주체로서 ‘인간’human being에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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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인간의 생각이라는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소위 ‘진리’로서 주장되어 왔던 것들의 내용이 시대, 주체 집단, 상황에 따라 크게 변해왔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때에 따라 정말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생각이 시대와 사회를 휩쓸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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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것이 19세기 후반 유럽인이 내세운 사회진화론이다. 모든 인류는 원시인에서 현대인으로 진화하며, 현재 살고 있는 인류 중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원주민이 원시적인 답보 상태에 있고, 유태인이 저급한 인종이며, 비유태계 유럽인이 가장 진화한 인종이어서, 뒤떨어진 인종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앞세워 엄청나게 비인간적인 일들이 행해져 왔으며, 최근 인류 역사의 오점으로 남아 있다.

10 overdevelopment

이 못지않게 한심했던 생각 중 하나는 인류는 자연을 마음대로 착취해서 풍요하고 편리하게 살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더 훌륭한 일이라는 인간중심적 개발주의다. 이로 인해 지구가 병들어 가고 있으며, 그 결과는 태어나는 미래세대에 작용하여 출산율이 줄어들고 예상 평균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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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런 사고 및 그에 기초한 행동방식은 ‘근대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남아 살아서 작동하고 있다. 반가운 것은 인류가 이 사실의 문제점을 인식하여, 극복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런 노력을 통틀어서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포스트모더니티’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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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티, 즉 문제가 많았던 모더니티(근대성)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효율적으로 열매를 걷으려면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할까?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생각’을 너무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다. 인간이 생각을 앞세워 작위적인 논리 구축에 빠져, 사회진화론이나 인간중심적 개발주의 같은 어처구니없는 궤변에 휘둘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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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생각’은 인간에게 있어서 소중한 능력 중 하나다. 하지만 머리로 논리만 따지지 않고, 가슴 혹은 ‘제3의 눈’으로 보는 통합적인 직관으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균형잡힌 시각으로 지구와 사람들 전체를 고려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습관을 몸에 붙였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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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가 송과체 및 소마틱 마커에 대해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말하고, 아직 채 밝혀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환기하는 이유다. 이 부분은 앞으로 다른 포스팅의 맥락에서도 계속 다루게 될 것이다. 들뢰즈가 말했던 “근대성의 촘촘한 그물”을 넘어서서 새로운 통찰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