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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송과체와 일상생활

중국 명나라 나관중의 유명한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다.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유비의 진영 근처에 매복하였다. 높은 성채에 올라 성 밖을 바라다보던 유비의 모사 제갈량은 “서쪽 숲에 살기가 어려 있으니 조조의 군사가 숨어 있는 게 분명하다”고 하면서, 유비와 군사들을 밤중에 몰래 성 뒷문으로 빠져나가 동쪽 오솔길로 이동하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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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라는 건 어떻게 해야 보이는 걸까? 눈에 보이는 게 아닌 건 확실하다. 제갈량은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도 파악하는 기량을 가졌을 정도니까, 천하의 두뇌로 이름을 전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제갈량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파동으로서 인식하는 송과체가 두뇌의 다른 판단 보조체계와 협동해서 일하는 구조가 잘 되어 있었나 보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어떤 문화권에서는 ‘제3의 눈’이 발달한 사람이라고 할 거다. 송과체가 세상적 성공과 파워의 상징이 되는 것은 이런 맥락이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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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과체는 또한 영성spirituality의 상징이기도 하다. 데카르트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송과체를 가리켜 우리의 영혼spirit, soul이 깃든 자리라고 말했다. 충분히 그럴 것 같다. 과거 여러 시대, 여러 사회에서 그런 말들이 계속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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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 이런 정도까지 과학적 논거로 얘기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 송과체 관련 담론들이 신비주의적인 얘기처럼 보이기 쉬운 것은 이렇게 영성spirituality을 논리적으로 논하기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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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일 송과체가 앞서 보아왔던 것처럼, 외부 대상에 대한 판단을 하는 기관이라면, 그 기능이 세상적 성공이나 영성처럼 특별한 일에만 관계하는 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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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면역체계의 센서세포처럼, 365일 24시간 작동하는 기관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함으로써, 역시 면역체계가 그렇듯이, 우리가 여러 가지 일상생활을 순조롭게 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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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능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나타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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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예로, ‘눈치’라는 것을 들 수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고 말로 표현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상대방의 기분을 알아채서 거기 맞추는 능력에 관련된 것이다. ‘눈치가 있다’ 혹은 ‘없다’는 식으로 사람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우리는 꼭 눈에 보이거나 적극적으로 의식하게 되지 않은 변화에 대해서도 거의 무의식적으로 맞추어 행동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 능력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서, 일상적으로 필요하며 동시에 대단히 중요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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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심리학 용어로 말하자면 ‘사회적 감수성’social perceptiveness이라고 하는데, 이 능력을 측정하는 테스트도 있다. 그런 테스트 중 한 가지 예를 보자.

7 눈치

위 사진은 시각적 지표로는 큰 차이가 없다. 눈의 생김새와 화장법의 차이로, 이 사진의 주인공들이 서로 다른 사람이며 왼쪽 둘은 여자일 것 같고 오른쪽 둘은 남자일 것 같다는 짐작은 가능하게 해준다. 그밖에는 시각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긴 정말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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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이 사진의 주인공들이 각각 서로 다른 마음 상태에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한 번 맞추어보자. 테스트에서 제시한 정답은 1번이 ‘관심 있음’interested, 2번 ‘친절함’friendly, 3번 ‘아련한 꿈에 잠김’fantasizing, 4번 ‘생각에 잠김’thoughtful이다. 대충 수긍이 가는 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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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눈빛만 보고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을까? 이것은 시각 지표가 아니므로 시신경이 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적’인 논증 방법으로는 이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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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일 우리가 외부 대상으로부터 오는 파동을 캡쳐하여 우리 자신을 중심으로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이건 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정서 상태에 따라 바로바로 뇌에서 나오는 파동의 패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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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달라진 파동이 우리 몸의 어떤 장치에 의해 인식되어, 거기 맞추어 즉각적으로 우리 몸의 반응이 결정되면서 우리의 인식과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았듯이, 만일 그런 능력을 전담하는 기관이 있다면, 그것은 송과체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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