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원시뇌

5 송과체와 시상하부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환경 속에서 우리 몸을 지키기 위해,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면역 시스템, 그 기본은 어떤 대상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해가 되는 것인지 판단하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면역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은 일단 어떤 물질이 우리 몸 안에 들어왔을 때, 즉 혈관을 떠돌다가 센서세포에게 들켰을 때부터 시작된다.

.
이걸로 충분할까? 우리 몸 바깥에 있는 대상에 대해 우리의 세포들이 판단할 필요는 없는 걸까?
당연히 있을 것이다. 우선 우리의 의식이 이 부분에 대해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어떤 대상이 어쩐지 기분이 안 좋다고 생각하면 그 대상을 피한다. 반대로 어쩐지 마음에 들면 접근한다. 그것이 어떤 장소든,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
하지만 우리는 생각하지 않아도 자기도 모르게 특정 대상에 대한 구별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음식에 대한 판단도 그런 경우가 많다. 어떤 음식은 입에 갖다 대는 순간 바로 뱉게 된다. “이 음식은 맛없는 거 보니까 내 몸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뱉어버려야지!”하고 생각할 새도 없이. 또는 어떤 장소에 갔을 때 그 장소가 쾌적하면, ‘아 여기 쾌적하다. 좀 더 있어야지’하는 생각이 들지 않아도 그냥 거기 더 오래 머물러 있게 된다.

.
이런 구별에는 시각적인 측면도 있다. 우리는 눈으로 보기 좋은 것에는 자동적으로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시각적인 것과 상관없는 측면도 있다. 대표적인 게 음식. 아무리 보기에 먹음직해보여도 맛없는 건 맛이 없다. 혹은 아주 예쁘게 꾸며 새로 오픈한 찻집에 들어갈 때는 “어머, 여기 예쁘다. 여기서 차 마시자” 하고 들어갔다가도 좀 앉아 있으면 온 몸이 긴장되며 불편해질 수 있다. 그러면 의식적으로 “예쁜 줄 알았는데 불편하네. 뭔가 안 좋은 요소가 있나보다, 나가자!”하고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왠지 나가고 싶어, 적당한 핑계거리만 있으면 나가게 된다.

.
그렇다면 이런 판단과, 또 거기 따른 행동에 대한 지시는 어디서 하는 것일까? 일단 우리가 맛을 느끼게 하는 식욕중추와, 뭔가를 좋아하게 만드는 쾌감 호르몬, 혹은 싫어서 기피하게 만드는 투쟁-도피 호르몬이 만들어지는 곳은 뇌과학에서 밝혀져 있다. 그것은 ‘시상하부’라고 불리는 부분이다.

5 시상하부와 송과체

시상하부는 송과체와 마찬가지로 원시뇌의 일부로 송과체 바로 앞 쪽에 존재한다. 쾌감 호르몬인 도파민, 옥시토신 등을 생성할 뿐 아니라 투쟁-도피 호르몬인 아드레날린 분비를 조절한다.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뇌의 기능을 신경계에 연결시켜, 온 몸의 작용이 일어나게 해주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에 따라 음식 섭취, 성적 욕구 및 행동, 체온 유지, 음식에 대한 느낌과 행동, 수면과 휴식에 대한 느낌과 행동, 바이오리듬 조절 등 우리의 생명과정에서 가장 기초적인 작용들에 거의 다 관여한다.

.
하지만 송과체에 대해서는 멜라토닌 호르몬과 약간의 신경전달물질을 생성한다는 것 외에는 거의 밝혀져 있지 않다. 위치로 보아서는 송과체가 시상하부보다 더 안전한 곳, 더욱 핵심적인 곳에 있어서, 뭔가 그런 역할을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왜 그럴까?

.
혹시 송과체가 하는 일이 시상하부와는 달리 물질적인 차원으로 잘 표현되지 않아서가 아닐까? 만일 송과체가 파동으로 대상을 식별한다면, 물질적 해부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현대 의과학은 이를 잘 포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제는 상당히 밝혀진 ‘경락’의 경우에서처럼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포스팅)

3 송과체 다시보기

이렇게 최근 들어 송과체에 대한 컨텐츠들이 인터넷 세계에서 무한히 쏟아져 나오며, 우리들의 지식을 더 풍부하게 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볼 때 송과체에 대한 최근의 대안적 담론들은 지나치게 신비주의에 흐르는 경향도 없지 않다. 앞서 본 ‘제3의 눈’에 대한 현대의 이미지들에서도 그런 신비주의적 경향을 읽을 수 있었다.

.
하지만 송과체는 엄연히 실재하는 우리 몸의 한 기관이다. 송과체가 그렇게 우리의 뇌 안에서도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심적이며, 가장 보호 받을 수 있는 위치에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분명히 우리 몸에서 중심적이며, 중요하고,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점들은 신비주의적이며 직관적인 지식 외에도 객관적으로 충분히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송과체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
최근 뇌의 활동을 파동의 움직임으로 측정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뇌과학’ 분야의 연구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 연구 중에서 사람이 음식을 먹거나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송과체 부분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밝힌 연구도 있다. 이것을 지금까지 밝혀진 인간의 생리에 대한 다른 지식에 비추어서 생각해보자.

.
송과체가 자리 잡고 있는 위치는 뇌 가운데서도 ‘원시뇌’라고 하여, 가장 먼저 형성된 부분에 속한다. 원시뇌란 진화생물학적으로 볼 때 가장 초기에 나타난 단순한 생명체에서부터 있었던 부분이다. (물론 이건 ‘뇌’라는 기관이 따로 분화되어 있는 생물의 경우에 대한 얘기다. 뇌가 없는 생물도 많으니까. 뇌가 없는 생물은 ‘장(腸)’이 뇌의 역할을 겸한다.) 생물이 진화하여 더 복잡한 기능이 추가되면 그 위쪽에 새로운 층이 추가된다. 마치 진주조개 껍질에 붙은 핵 위로 진주물질의 층이 계속 덮이듯이.

.
원시뇌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생명체로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예를 들면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는 신체의 리듬, 호흡, 생식, 출산 등이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런 것만큼 중요하고 기초적인 기능에 어떤 것이 또 있을까?

.
어떤 대상이, 혹은 환경 요인이, 자신에게 이로운 것인가 아니면 해로운 것인가 판단하는 능력은 어떨까?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요소와 맞닥뜨려 살지 않을 수 없는 생물체로서, 이건 아주 중요한 능력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새로운 음식, 새로운 사람, 새롭게 주어진 환경 요인과 마주했을 때 우리 몸에서 이에 대해 반응하기 전에 먼저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9 brainscan
만일 그런 판단을 전담하는 기관이 있어야 한다면, 송과체보다 더 적합한 기관을 찾기도 어려울 것 같다. 위치를 봐서도 그럴 것 같고, 전통 사회에서 어디서나 송과체를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간주해왔다는 사실과도 어느 정도 맥이 닿는다.  내가 아는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도, 이 사실을 반증해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러시아 생체물리학biophysics 분야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음식을 입에 갖다 대는 순간 송과체가 활성화되며 신호물질이 식욕중추를 자극한다고 한다.

.
아쉽게도 본문을 읽을 수 없고 영어로 아주 짧게, 웬만한 논문 요약보다 훨씬 더 짧게 내용을 소개한 글만 읽을 수 있어서, 더 이상 자세한 것을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몸에서 일어나는 유사한 반응과 유추해보면, 그 과정이 어느 정도 이해될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