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온고이지신

1 쓰기에 앞서

이 카테고리를 통해 앞으로 쓰게 될 글은 <공동체영성모임>이라는 그룹에서 한 강연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21세기에 있어서 공동체와 영성”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해달라고 제안 받았을 때 나는 기쁘기도 했고 부담도 느꼈다.

.

21세기, 공동체, 영성- 이 키워드들은 그동안 나의 관심사, 아니 내가 삶을 통해 배우게 된 것들을 가장 잘 요약할 수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소중한 나눔의 기회를 갖게 되어 기뻤고, 동시에 이 키워드에 담길 수 있는 그 풍부한 내용들을 단 몇 시간의 강의, 혹은 몇 페이지의 강연문에 어떻게 담을 것인가 곤혹스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회는 언제나 소중한 것이다. 그날 모임에서 21세기 영성의 비전을 함께 나누어주신 참가자들께 감사드린다. 그로 인해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많이 접한 사람들, 또 많이 접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정리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

‘영성’을 주제로 얘기할 때 조심스러워지는 부분이 있다. 적어도 지난 2~300년간의 근대기 동안, ‘영성’은 진지한 과학적 탐구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왔으며, 일상의 대화 주제로서도 정당한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고 본다. 따라서 자칫하면 영성 담론은 ‘말 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의 대화’가 될 수도 있고, 참여자의 폭이 넓어지면 그 중 많은 사람들에게 생뚱맞은 얘기로 들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특히 역점을 두었던 부분에 대해 미리 얘기해두고 싶다.

.

첫 번째는 ‘영성’에 대해 얘기할 때 필요한 지식을 구성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영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적 탐구의 방법론을 좀 더 융통성 있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근대기 동안 우리는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추론’만이 우리를 진리에 데려다준다는 믿음을 확고히 해왔다. 하지만 영성은 이성과는 전혀 다른 영역의 정신 작용이므로, 과학적인 추론만으로는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데 한계가 당연히 있을 것이다.

.

세계 최고 권위의 백과사전인 엔싸이클로피디아 브리태니커Encyclopedia Britannica에 의하면 지식은 그것을 얻는 방식에 따라 크게 3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경험, 즉 관찰에 의하여 얻는 것이며, 두 번째는 이성, 즉 추론에 의해서 얻는 것이고, 세 번째가 직관, 즉 영감에 의해서 얻는 것이라고 한다. 이 글은 이 세 가지 방법을 모두 탄력적으로 이용하게 될 것이다.

.

두 번째는 이 글은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글쓰기라는 것이다. ‘영성’을 중시하게 되었다는 21세기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1세기의 특징을 이해해야 하고, 그러려면 그 이전 세기와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한다. 이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은 역사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정신이다.

.

특히 이 글에서는 ‘환경역사’의 방법론을 따를 것인데, 여기 대해선 다음 포스팅에서 좀 더 자세히 볼 것이다.

.

세 번째, 나는 ‘영성’이라는, 보통 정신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영역도, 우리의 물질적 존재 기반과 깊이 관련된다고 믿는다. 이 글에서도 그런 관련성의 상호작용을 조명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순전히 형이상학적인 글도, 100% 역사적인 글도 아니다. 맥락의 필요에 따라 자연과학·역사·사회과학적 성과들이 통합될 것이다.

.

이런 나의 입장은 좋게 말하면 전일주의holism, 혹은 다학문적 접근interdisciplinary approach, 심지어 통섭consilience과 비슷한 거라고 할 수 있을 거고, 부정적으로 보자면 아마추어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든 나는 이렇게 해야 세상 일이 제대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6 온고이지신, 혹은 오래된 미래

지구의 기온 변화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이렇게 다양한 수준과 규모로 변화주기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자연의 이치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얘기다.

.

지구는 우주 속에서, 즉 다른 무수한 별들 및 기타 우주적 실체들이 이루는 환경 속에서, 그런 다른 존재들과 힘의 균형을 이루어 일정한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있는 존재다. 태양과 달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일 년, 한 달을 주기로 하는 운동 궤도에 대해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범위의 우주의 영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

태양과 달은 지구에 뚜렷한 영향을 주는 실체로서 오랫동안 지구인의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어 왔기 때문에 지구와의 관련성이 충분히 규명되어 대중들에게도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태양과 달은 지구에 영향을 주는 우주적 환경 속에서 지극히 작은 일부일 뿐이다. 실제로는 에너지를 갖는 모든 우주 속 존재들이 크건 작건 지구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6 Earth and Universe
그 여러 가지 영향들이 합성되어 크고 작은 주기로 지구에 작용할 것이고, 그것은 우리에게 지구환경의 주기적 변화로 느껴질 것이다. 그 영향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이 그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나타나는 방식에 대해서, 지금까지의 과학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밝혀왔다. 하지만 아직도 그것은 전체 우주의 작용 중에서 그야말로 태산의 티끌 정도도 되지 않을 것이다.

.

몇 시간에서 몇 억 년까지를 주기로 하는 엄청나고 엄정한 대자연의 변화 앞에서 김수영의 시구가 새삼 떠오른다.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만큼 작으냐!
정말 얼만큼 작으냐…“

.
어쨌거나 이런 우주의 알 수 없는 영향 속에서 지금 급가속 변화기에 들어가 있는 지구, 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
간단히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붙잡을 지푸라기는 있다. <온고이지신>이라고, 과거는 언제나 미래를 위한 스승이다. 이 가속적 변화기를 어떻게 잘 넘길 것인가, 그 방법을 찾기 위해선 지난 200년 간, 그리고 가능하다면 지난 1만 년 간,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는 ‘오래된 미래’무ancient future라는 표현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정말 적절하게 잘 집어낸 것 같다.